〈새로운 분배 질서〉
2026년 6월 14일 · 4
4월 23일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 앞에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조합원 4만 명이 모였습니다. 삼성전자 전체 직원의 3분의 1이 모인 셈입니다. 조합원들은 검은색 조끼를 입고 “투쟁”을 외쳤습니다. 노조가 요구하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성과급 산정 기준의 투명화입니다. 둘째, 연봉 50퍼센트 이내로 제한되어 있는 성과급 상한의 폐지입니다. 셋째, 연간 영업이익의 15퍼센트 성과급 활용입니다.
이번 갈등은 과거의 임금 협상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단순히 많이 달라는 요구가 아니라, 성과를 어떤 규칙으로 나눌지 정하자는 근본적인 질문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 요구안은 각각 정보의 투명성, 보상 구조의 확장성, 분배 규칙의 확립이라는 서로 다른 층위를 지닙니다.
투명성과 신뢰
가장 설득력을 얻는 대목은 투명성 확보입니다. 보상은 숫자 이전에 신뢰의 영역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인텔 같은 글로벌 기술 기업들은 성과 평가와 보상 체계를 상당 부분 투명하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윤리 경영이 아니라 불필요한 갈등 비용을 줄이고 조직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경영 전략입니다. 삼성전자의 경우에도 투명성 확보는 타협의 대상이라기보다 지연될수록 기업의 사회적 비용이 커지는 영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과급 상한 폐지는 조금 더 복잡한 경제적 논리를 포함합니다. 상한제는 호황기의 과도한 보상을 억제하는 장치이지만, 이를 제거할 경우 보상의 상단은 열리는 반면 하단은 닫히는 비대칭 구조가 형성될 우수 있습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벵트 홀름스트룀은 성과 기반 보상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위험과 보상이 대칭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익을 공유한다면 손실에 대한 위험 부담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상한 폐지는 정교한 조건부 설계가 필요합니다.
반도체 산업의 특수성
가장 쟁점이 되는 부분은 영업이익의 15퍼센트를 성과급 분배 재원으로 명문화하자는 요구입니다. 폭스바겐 등 일부 기업이 이익 공유제를 시행한 사례가 있지만, 반도체 산업은 흐름이 다릅니다. 반도체 경기는 직선이 아닌 급격한 파동의 형태를 띱니다. 실제로 TSMC나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실적 추이를 보면 호황과 불황의 격차가 극단적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고정된 분배 비율은 호황기에는 투자 재원을 잠식하고, 불황기에는 노사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1970년대 미국 자동차 노조가 제너럴 모터스(GM)와 맺었던 고정 보상 체계는 산업의 성장기에는 주효했지만, 시장 환경이 변하자 기업의 대응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삼성전자가 직면한 반도체 시장은 자동차보다 변동성이 크고, 기술 주기가 짧습니다. 엔비디아가 증명하듯 오늘의 이익은 내일의 초격차를 위한 설비 및 연구 개발 투자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이 맥락에서 이익의 일정 비율을 고정하는 방식은 기업의 생존을 결정짓는 투자 여력에 제약을 가할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분배 질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요구를 현실성이 없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글로벌 인재 시장에서 경쟁하는 노동자들은 자신이 창출한 가치에 상응하는 명확한 몫을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해결의 실마리는 고정된 숫자에 얽매이는 대신 숫자에 유연한 조건을 결합하는 데서 찾아야 합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초과 이익에 대해서만 분배 비율을 높이거나, 연구 개발 투자 규모와 연동하여 분배를 조정하는 방식, 혹은 단기 실적이 아닌 수년간의 평균 이익을 기준으로 삼는 대안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결국 이번 논쟁의 본질은 공정성을 담보하는 규칙과,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유연성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과정입니다. 삼성전자에서 벌어지는 이 갈등은 개별 기업의 노사 분규를 넘어, 변동성이 극심한 21세기 첨단 산업에서 새로운 분배 질서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실험입니다. 성과를 나누는 행위 자체보다, 어떤 조건과 시간의 지평 위에서 나눌 것인지가 핵심입니다. 지금의 충돌은 새로운 시대를 위한 설계도를 그리는 과정입니다.
@theswi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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